## 언론사 입사지원 샘플기사로 작성했던 기사입니다.
1. 프레임 짜기
언제부턴가 노동자들이 파업하거나 처우개선을 위한 쟁의 행위, 투쟁, 문화제 등을 열면 언론에서는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보다는 ‘그들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이라면 정규직이 되길 바라는가’를 먼저 따지고 보도한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부르라고 강요하는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비슷하긴 하다. 이것과 비슷하게 같은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냥 노동자(또는 근로자, 또는 그냥 ‘직원’이라고도 하더라)라고 부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지칭한다. (직원은 정규직일 뿐 같은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비정규직에게는 직원이라고 잘 부르지 않더라) 고용형태에 따른 차이일 뿐인데 굳이 구분 지어 표현한다.
일정 기간 이상 지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하는 (실제로 보호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고민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테지만) 법이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프레임’ 설정은 결국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미생의 장그래가 이야기했듯이 단지 ‘일을 더 오래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흔히 이야기하듯 ‘고용 안정’을 원하는것 뿐이지만 마치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똑같은 노동자인데 왜 이렇게 나눠서 불려야 하는가. 왜 이렇게 나눠서 부르고 있는가. 왜 이렇게 나뉘길 바라는가.
2. 정규직, 그리고 비정규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명 나누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누어져 있는 것을 더욱 더 명확하게 ‘나누는’ 것, 그러니까 ‘붙어질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중규직’이라고 하는 말 같지도 않은 것을 정부에서 지껄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긴 말이 아닌데도 말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나라니.
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근로자란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사업장 내에 전일제로 근무하면서 근로계약기간의 정함이 없이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는 근로자를 말한다. 정규직 근로자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비정규근로자, 비전형근로자, 비정형근로자 등의 표현이 사용된다.
(실무노동용어사전, 중앙경제)
비정규직 근로자
비정규직 개념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은 없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근로자대책특위에서 논의된 사항을 반영하여 한시적 근로, 시간제근로, 비전형근로자 모두를 비정규직근로자로 정의하고 있다.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근로자(기간제),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근로자(단시간),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는 근로자(파견) 등을 말한다.
(실무노동용어사전, 중앙경제)
위 정의에서도 읽어볼 수 있듯이 정규직은 일반적으로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다’라는 의미가 가장 크다. 그래서 많은 취업준비생과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이 되고 싶어한다.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들 역시 자녀들이 비정규직으로 취직되는 것이 아닌 정규직으로 취직되는 것을 바란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비정규직(예를 들자면 프리랜서나 인턴 등)을 택해서 일을 시작하게 될 경우 ‘아직 취직이 안 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을 ‘미생’으로 볼 수도 있겠다)
또 정규직은 ‘4대보험이 적용되는가’로 구분되기도 한다. 비정규직을 원하지 않는 부모들과 취업준비생에게 있어서 4대보험은 가장 큰 기준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특히 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에 따라서 보험료가 달라지는 건강보험 등이 가장 큰 혜택일 수도 있다. 물론 요즘은 비정규직도 일부 4대보험을 적용해주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용해서 많은 대학의 학과들이 취직률을 따지기 위한 조사를 하면서 ‘건강보험’을 적용받는가에 따라 ‘취직이 됐다, 안됐다’로 구분 짓기도 한다. 비정규직도 건강보험만 적용받고 있다면 취직이 된 것으로 간주하고 취직률을 올리는 것이다. (내가 졸업한 학과만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몇몇 취업준비생의 경우 ‘정년보장’과 ‘4대보험’이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중요한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 정규직에게는 이 두 가지 외에도 정말 많은 혜택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대보험이 왜 중요한지, 자신이 이 회사와 고용계약을 할 경우 4대보험을 적용받는지, 정년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내가 받을 수 있는 어떤 혜택이 있는지, 회사에는 어떤 복지시설이 있는지, 얼마의 상여금이 얼마 간격으로 주어지는지,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는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됐다. 비정규직을 바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정규직이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 된 것이다. 물론 중소기업이나 조그만 기업의 경우 정규직의 혜택이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그것보단 분명 나을 것이다.
계약직인 장그래에겐 식용유.. 정규직들에겐 스팸. 이것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사용자 측과 협의로 얻을 수 있는 혜택들이 있다. 그 협의라는 시스템이 바로 ‘단체협약’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협약이라는 것 역시 비정규직이 관여하기에는 어려운 시스템이다.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통해 시행하고 평화 교섭이 어려워질 경우 쟁의행위를 통해 조건에 대해 관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경우 ‘노동조합’이라는 이 단체협약 주체에 포함되는 것부터가 어려움이 있다. 지금이야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많이 생겨났지만, 대부분의 사용자 측은 여전히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복수노조가 있는 회사의 경우 교섭대표노조와 협상을 하는데 비정규직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비정규직노조가 조건 관철을 위한 쟁의행위를 시도한다라…
3. 나누기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나누기’는 커지고 있다. 정규직은 기본적으로 ‘정년이 보장’되고, ‘4대보험으로 법적 사회보장장치’가 적용되며, ‘각종 복지-혜택’을 받으면서 이 모든 것을 사용자 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통해 키워나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규직들이 가지고 가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1년 계약을 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쉽게 전환될 수 없다. 2년이라는 시간 내에 사용자 또는 고용주에 의해서 얼마든지 해고될 수 있다. 또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그뿐만 아니라 정규직을 위한 각종 혜택을 따질 경우 그 차이는 쉽게 계산하기조차 어렵다.
정규직은 자신들이 받는 것을 갈수록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만큼 사용자와 여러 가지 형태의 협의로 유지해가고 있다. 사용자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정규직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밖에 없다고 정규직들을 압박한다. 정규직은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외면한다. 한편으로 비정규직들에겐 정규직들이 가진 것을 놓지 않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고 비정규직에게 알린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욕하면서도 정규직이 되고 싶어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갈등은 여기서 시작한다. 이간질이다.
자신들의 곳간을 채워가면서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일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테니 더 채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곳간이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새롭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 곳간이 너무 좁아지면 더 받을 것이 없어지니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곳간을 늘려달라고 부탁한다. 곳간이 늘어나야 너희도 들어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늘리는데 동참해달라고 한다. 곳간이 늘어난다. 그러면 바깥에 있는 사람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곳간을 채우기만 바쁘다. 그러다 전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나면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자식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이다. 자식들이 들어오게 하려고 또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지… 너희도 언젠가 들어와서 너희의 자식들도 들어오게 해야 하지 않겠냐며 말이다.
권력을 가진 정부일 수도 있고, 경제력을 가진 사용자일 수도 있는 누군가는 이 이간질 짓거리를 이용해 둘을 나눠왔다. 정규직에게는 늘 협의를 통한 ‘혜택’을 주며 일종의 ‘충성’을 요구했고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유지해왔다. 반면에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며 ‘충성’을 요구했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것을 얻었고 유지해왔다. 비정규직의 ‘희망’을 통한 ‘충성’은 정규직에게 ‘혜택’으로 돌아갔고 결국 ‘충성’이 되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것’이다.
4. 나눠서 이용해먹기
무엇을 위해 이간질당했고 무엇 때문에 이용당한 것일까.
단순히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회사 차원의 문제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정치적으로 충분히 이용당해왔고 지금도 이용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규직’이란 말도 꺼내서 지껄이고 있지 않으냐 말이다. 자꾸 자기들은 ‘중규직’ 모른다고 하지만 말이다.
흔히 비정규직 문제를 꺼낼 때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이거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은 김대중이 만들고 노무현이 확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가 맞다 틀리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고용이 불안한 점이 다 김대중 때문이고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앞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지, 법안을 누가 만들고 통과시켰는지, 비정규직 보호법이 언제 시행됐는지에 관해 물어보면 아무 말 못 한다. 단지 저 한 문장이 전부다. 어쩌면 저 문장 하나가 그 사람들의 정치적 결정에서 큰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반문을 하고 싶다. 그러면 쥐.. 아니 이명박은 해결했는지, 닭… 아니 박근혜는 해결하고 있는지 말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근무조건, 복지, 교육훈련기회 차별시정 및 정규직 전환’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알고 있다’고 울먹이는 척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쥐.. 아니 이명박 역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늘었다고나 할까. ‘잃어버린 10년’으로 발생한 문제라면 해결하면 될 텐데 해결하지 않고 역시 저 한 문장만 퍼뜨리고 다녔다.
마찬가지로 ‘공공부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2015년까지 하겠다고 공약했던 닭.. 아니 박근혜도 임기 절반을 지내는 동안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한 공공 연구기관에서 10년 이상 근무했던 비정규직 연구원을 해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은 김대중과 노무현 때문이라는 한 문장은 여기저기서 보인다. ‘잃어버린 10년’, ‘김대중과 노무현 탓’은 ‘이명박근혜’ 체제에서 ‘종북’ 못지 않은 최고의 떡밥이 됐다고나 해야될까.
여튼 이런 과정들을 통해 비정규직은 김대중-노무현을 계승하는 정당에 대해 적지 않은 ‘미움’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미움은 다른 것들과 합쳐져서 선거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왔을 테고 말이다. 반면에 정규직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보수’적인 마인드로 변화되고 ‘보수’적인 결과를 만들어냈을 거다.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5. 새로 나누기
정부, 그리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언급했던 ‘중규직’ 문제도 결국 이런 과정들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충분히 나눴고 충분히 이용했지만, 그들에겐 뭔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나 할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떡밥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쥐새.. 아니 이명박 5년, 닭근.. 아니 박근혜 2년을 지내면서 더는 나뉘지 않는 모양새가 비쳤을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더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규직 및 고소득층들의 등장(이것을 강남좌파라고 하던가)과 비록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나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정규직노조의 결성 및 투쟁,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싸워주는 ‘동조의식’들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의 총선(2008, 2012), 그리고 두 번의 대선(2007, 2012)에서 이용해먹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자 나누기’는 또 다른 어떤 목표를 위해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규직’을 만들면서 새로운 ‘노동자 나누기’가 시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